김사장의 짧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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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TODAY] 63번째 영화, 덩케르크 (2017)

김사장의 짧은 리뷰 2017. 7. 29. 03:31

[MOVIE TODAY] 63번째 영화, 덩케르크 (2017)

 

2017.07.27. 목요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어제 저녁, 필자의 인생영화는 갱신됐다. 주변 가까운 친구들은 영화가 졸렸다고 했다. 심지어 자고 나온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서 사실 특별한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웬걸,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과 각본뿐만 아니라 한스 짐머의 음악까지, 영화 덕후인 필자를 자극하지 못하는 요소가 없었다. 이 영화를 보려고 살아왔나,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극장 밖으로 나오는 필자는 이 세상 누구보다 성공한 덕후였다.

 

<미행>(1998)로 상업 장편에 데뷔한 놀란 감독은 이후 <메멘토>(2000), <인썸니아>(2002), <배트맨 비긴즈>(2005), <다크 나이트>(2008), <인셉션>(2010), <인터스텔라>(2014) 등 연출과 각본을 맡은 작품들이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성공적인 필모그래피를 그리고 있다. 특히 <덩케르크>는 그의 9번째 연출 각본 작이며, 그의 필모에서는 첫 실화 작품이다.

 

놀란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을 쓰지 않기로 유명한 감독이다. 오죽하면 CG랑 싸웠냐, 하는 소리도 있을 정도다.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을 위해 옥수수 밭을 경작했다거나 <다크 나이트>에서 대형 트럭을 뒤집고 병원을 폭파시키는 등의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덩케르크>에서도 놀란 감독의 CG 혐오증은 계속되는데, 이번에는 2차 대전 당시 영국군의 전투기였던 스핏 파이어를 실제로 띄웠다. 스핏 파이어는 2인승인데 앞자리에 카메라를 두고 뒷자리에 배우를 태운 상태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덩케르크>에는 세 개의 공간, 시간 스케일이 존재한다. 잔교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 하루, 그리고 하늘에서 한 시간이다. 잔교에서의 주요 인물은 토미(핀 화이트헤드). 독일군의 기습에서 간신히 벗어난 토미는 덩케르크 해안에 도착한다. 퇴각에 성공하기까지 토미는 독일군의 폭격에 시달린다.

 

바다에서의 주요 인물은 도슨(마크 라이런스)과 피터(톰 글린 카니). 영국은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영국군을 구하기 위해 시민들의 선박을 징발한다. 도슨은 선발된 선박의 선주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위해 선박을 징발한다는 사실을 알고 해군이 실어달라고 한 구명조끼를 전부 싣고 직접 배를 몰아 출발한다. 바다에서의 하루는 도슨이 덩케르크로 향하는 여정을 다룬다.

 

마지막은 하늘에서의 한 시간이다. 하늘에서의 주요 인물은 파리어(톰 하디). 파리어는 영국이 덩케르크 해안 상공으로 보낸 스핏 파이어 3기의 파일럿이다. 파리어의 전투기는 첫 번째 교전에서 연료계가 고장이 난다. 남은 연료의 양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제한된 연료를 가지고 영국군의 퇴각을 돕는 역할이다.

 

놀란 감독은 일주일, 하루, 한 시간이라는 서로 다른 시간 스케일의 이야기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다가 후반 30분가량을 남겨두고 덩케르크 해안에서 합친다. 앞선 70분 동안 잔잔하게 그러나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후반 30분 동안 참았던 아드레날린을 뿜어낸다. 치열한 전투와 전투가 끝난 후의 모습, 그리고 내레이션은 고조됐던 감정을 훌륭하게 갈무리한다.

 

<덩케르크>는 대사가 거의 없다. 초반 10~20분 동안 나오는 대사라고는 토미의 “I’m English!”밖에 없다. <덩케르크>에서 놀란 감독은 대화를 거의 쓰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는 그 대사가 덩케르크 해안에 있는 영국군의 심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서도 보이는군. 조국.”, “보인다고 갈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리고 무엇이 보이냐는 질문에 조국!”이라고 대답하는 장면들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조차 소름이 돋게 만든다. 그 외에 토미의 괜찮아요.”라든지, 영국에 도착한 군인들에게 건네는 한 시민의 “That’s enough!” 또한 장면을 떠올려 보면 명대사다.

 

<덩케르크>의 별미는 한스 짐머의 음악이다. 이미 그 명성이 자자한 한스 짐머는 그간 다소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느낌이 있었다. 본인이 어떻게 음악을 만들어도 사람들은 본인을 칭송할 거라는, 일종의 실력에 대한 자신이자 오만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스스로의 한계를 넘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한스 짐머는 급박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오케스트라 사운드 위에 시계 초침소리를 얹었다. 결과는 성공적. 제법 피곤한 상태에서 극장에 방문한 필자가 음료를 마시는 것도 잊은 채 영화에 몰두하고 있었으니 말 다 했다.

 

<덩케르크>는 기존에 존재하던 모든 전쟁 영화와 다르다. 어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를 능가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필자에게는 인생영화다. <덩케르크>는 대사도 적고 인물도 적으며 교차편집으로 3개의 플롯을 동시에 보여준다. 심지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실화 기반 영화는 이야기의 드라마를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많은 실화 기반 영화는 드라마를 구축하기 위해 불필요한 감정을 우겨넣곤 한다. 그러나 <덩케르크>에는 큰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사건들이 없다. 그야말로 불필요한 기름기를 쫙 뺀 스테이크 같다.

 

감정을 강요하지도 않고, 감정이 과잉되지도 않으며 연출이 각본을 망치지도 않고 각본이 연출의 발목을 잡지도 않는다. 배우들의 연기를 십분 활용하면서 동시에 배우들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놀라운 음악을 삽입하면서도 음악보다 상황이 기억에 남으며, 그래픽을 활용하지 않고도 그래픽 같은 화면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20년 놀란 영화의 정수만을 담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자신감이 넘치지만 경박하지 않게, 힘을 준 것 같지만 힘을 빼고 만들어낸 <덩케르크>는 실화를 신화로, 영화를 예술로 만들었다.

 

놀란의 자신감. 궁금하면 보시라! 평점은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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