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장의 짧은 리뷰

87번째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古山子, 大東輿地圖, The Map Against the World, 201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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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번째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古山子, 大東輿地圖, The Map Against the World, 2016

김사장의 짧은 리뷰 2016. 9. 12. 00:32



더 말해 무엇하랴. 지난 주에 개봉한 영화들 중 가장 최악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이 영화를 택할 것이다. <이끼(2010)>, <글러브(2011)> 등을 연출했던 강우석이라는 거장답지 않은 영화였다. 박범신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라고는 하지만, 전혀 맥락없는 이야기 전개에 넌더리가 날 정도이다.

우선 영화는 고산자 김정호(차승원)이 팔도를 돌아다니며 지도를 작성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게 끝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끝이 난다. 그 뒤로는 어린 고종을 왕위에 앉혀두고 수렴청정을 하는 흥선대원군(유준상)을 둘러싼 정치 다툼과 천주교 박해 등 구한말 조선의 시대적인 이야기만을 주워삼는다. 거기에 부성애, 애국심 등을 끼워넣으니 몸에 좋다는 것은 다 넣었지만 맛은 하나도 없는 이상한 영화가 탄생했다.

강우석 감독의 욕심이 과했던 만큼 영화는 그 자체로 최악이라 할만큼 엉망이지만, 그 가운데서 단연 빛나는 주제는 '지도'였다. 나는 지리학도이다. 그만큼 '지도'는 나에게 있어 아주 매력적인 소재이다.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라는 소재가 던지는 지리정보에 대한 담론을 이 리뷰에서 조금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리정보는 말 그대로 지리적인 정보이다. 흔히 GIS라고 알고 있는 이 말은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즉 지리정보시스템의 줄임말이다(최근에는 영국의 Goodchild 교수를 필두로 Geographic Information Science에 대한 담론이 논의되고 있다). 지표 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지리정보이며, 지도는 그러한 지리정보들을 종이 위에 여러 기호로 옮겨놓은 것이다.

현재와 같은 항공영사사진, 위성사진 등이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지리정보가 곧 힘이었고 국가 안보였다. 국가의 주요 시설과 도로정보, 경작지를 비롯한 지형과 시설물들이 표기된 지도는 말 그대로 극비였다. 심지어 '지리학'은 제왕학으로 분류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근현대에 들어 지리정보가 민간에 보급되면서 지리학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은 드물어졌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포켓몬고' 열풍이 한창이었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는 커다란 논란이 있었는데 바로 구글에 지리정보를 제공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문제였다. 그 중 타협점을 찾지 못했던 쟁점은 바로 군사시설. 국가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흥선대원군도 동일한 이유로 대동여지도 목판본을 조정에 귀속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김정호의 입장은 조선 백성들이 정확한 지도를 쉽게 접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리정보는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한다는 입장이지만 동시에 우리나라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제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리정보를 활용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N, D 포털 사이트의 지도 서비스, GPS, 네비게이션 등이다. 지리정보를 활용한 이같은 서비스들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윤택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주요 군사시설들은 국가 안보의 핵심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 대한 접근은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지리정보에 대한 담론이 영화를 통해 더욱 활발히 진행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만, 과연 뿌연 흙탕물과 같은 이 영화를 통해 그러한 담론이 이끌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더욱 씁쓸한 생각이 든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이 영화에서 오프닝 시퀀스를 제외한 관람 포인트는 김정호와 바우(김인권)의 케미에 있다. 영화 초반 '역시 차승원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능청스러움이 김인권이라는 감초를 만나 더욱 빛을 발하는데 이 장면들은 비록 짧지만 '역시'라는 말을 반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과하면 오히려 모자람만 못하다. 평점은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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