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장의 짧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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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번째 영화, 밀정 The Age of Shadows, 2016

김사장의 짧은 리뷰 2016. 9. 10. 19:14



김지운 감독의 신작이다. <조용한 가족(1998)>, <반칙왕(2000)>, <장화, 홍련(2003)>, <달콤한 인생(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악마를 보았다(2010)> 등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를 거쳐온 그의 작품을 논할 때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그의 뮤즈 이병헌과 송강호이다.

이병헌은 <달콤한 인생(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악마를 보았다(2010)>, 송강호는 <조용한 가족(1998)>, <반칙왕(2000)>,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에서 각각 김지운 감독과 함께 작업한 이력이 있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김지운 감독의 수려한 연출 덕에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나 이번 작품인 <밀정>에서 김지운 감독은 각본과 연출 뿐만 아니라 영화의 색감, 조명, 음악까지 영화의 모든 부분에서 한껏 힘을 준 것이 느껴진다.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영화는 감독의 역량과 스크린 속에 숨어있는 웅지를 느끼게 하는 법이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의 연기보다 감독의 기세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껏 일제 강점기를 소재로 하는 영화는 많았다. 그만큼 우리의 아픈 역사이고 너무나 익숙한 클리셰다. 하지만 김지운 감독은 시대적 분위기나 '친일파 = 절대악'이라는 평면적인 대립구도를 깨뜨리고 이정출(송강호)라는 인물의 복잡한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 상해 임정에 잠시 몸을 담았던 이정출은 '기울어진 배'를 등지고 일제의 경찰이 된다. 그런데 영화 초반(거진 오프닝 시퀀스라고 봐도 될 정도) 김장옥(박희순)의 죽음은 그에게 아주 작은 계기가 된다. 의열단을 쫓으며 의열단의 핵심 인물인 김우진(공유)를 만나며 이야기는 힘을 얻기 시작한다.

주목할만한 것은 역시 송강호의 놀라운 연기력이다. 특별출연이었던 이병헌(정채산 역)이 가진 재능이 '스스로가 극중의 인물이 되는 것'과 '압도적인 존재감'이라면, 송강호의 재능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어떤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도(2014)>, <관상(2013)>, <설국열차(2013)>에서도 이병헌처럼 캐릭터 그 자체가 되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아주 사소한 행동 하나, 말투 하나가 송강호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되었다. <밀정>에서도 송강호는 여전했다. 말투 하나 행동 하나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 송강호의 이정출은 뭔가 특별한 무언가가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최민식이나 이병헌이 와도 지금과 같은 이정출은 연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별출연으로 잠깐 나온 이병헌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하시모토 역을 연기한 엄태구였다. 가장 최근에는 <베테랑(2015)>에서 모습을 보였던 엄태구는 마치 진짜 일본 경찰같은 연기를 선보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역시 부하 경찰의 뺨을 때리는 장면. 의열단을 잡아 출세하겠다는 그의 광기가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2007년 <기담>으로 데뷔한, 이제 곧 10년차에 접어드는 무명(아직 안정적인 조연급 배우는 아니므로) 배우임에도 때로는 휘몰아치고 때로는 느긋한 그의 연기는 앞으로의 모습을 더 기대하게 하는 배우임을 스스로가 증명했다.

단점이 있다면 후반부에서 매듭을 풀면서 힘이 빠진다는 것이다. 페이드 인/아웃을 통한 시퀀스의 전환은 빠른 이야기 전개에 용이하지만 다소 루즈해지는 감이 있는 기법이다. <밀정>은 첩보 느와르에 가깝다. 내게 있어 첩보물의 제 1 미덕은 끝까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긴장감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긴장감이 풀리면서 극의 장르는 송강호와 공유의 브로맨스에 가까워진다.

또한 김우진(공유) 캐릭터를 충분히 살려내지 못했다는 것. 분명 송강호와 공유의 투 톱 영화인데 결국 살아남은건 송강호 하나 뿐이다. 입체적 인물인 이정출의 내면에 보다 집중하면서 주변의 인물들은 아웃 포커스 되는 부작용이 생겨버렸다. 사실상 송강호를 전면에 내세운 김지운 감독의 출사표라고 볼 수 있겠다.

시대적 서사는 개인의 집합을 통해 만들어진다. 평점은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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