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장의 짧은 리뷰

<흥부>, 피다가 져버린 꽃. 본문

영화 FILM

<흥부>, 피다가 져버린 꽃.

김사장의 짧은 리뷰 2018. 2. 17. 16:09

<흥부>, 피다가 져버린 꽃.

 

2018.02.14., CGV 강변

 

<흥부>는 흥부전이 쓰이게 된 이유와 그 유래를 소재로 한다. 굳이 따지자면 민담의 재해석인데, 글쎄, 굳이?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굳이 흥부전을 가져와 이렇게 부질없게 사용해야 했나라는 의문이다. 영화로서의 재미는 거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흥부>는 두 가지 점에서 티켓값이 아깝지는 않은 영화다.

 

첫 번째 이유는 이 영화가 이제는 고인이 된 배우 김주혁의 유작이라는 점이다. <다크 나이트><분노의 질주: 더 세븐>가 각각 히스 레져와 폴 워커의 유작이라는 점에서 보다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됐듯 <흥부>도 김주혁의 유작이라는 점에서 필자에게는 나름 특별한 영화가 됐다.

 

특히 김주혁이 영화에서 연기한 조혁이라는 캐릭터는 흥부전의 흥부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연흥부(정우)글쟁이로서 각성하게 하는 계몽가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스크린에서 또는 브라운관에서 연기를 보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고인에게 더할 나위없이 어울리는 캐릭터기도 하다.

 

영화 속에 김주혁이 정우와 이야기하다가 등을 돌리는 장면이 있다. 대낮에 집 안이었는데 김주혁이 등을 돌리고 걸어가자 화면 밝기가 끝도 없이 어두워지며 관객의 시야에는 검은 공간만이 들어온다. 영화적 장치로서의 역할도 있겠지만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난 김주혁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도 될 수 있지 않을까.

 

두 번째 이유는 이 영화는 필자와 같은 글쟁이들, 나아가 모든 매스미디어 및 문화콘텐츠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감독의 일침이라는 점이다. 영화에서 감독이 지속적으로 던지는 이야기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다. 영화의 아주 초반, 흥부와 김 삿갓(정상훈)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흥부가 문방사우가 뭐냐고 묻자 김 삿갓은 붓 종이 벼루 먹물이라 대답하지만 흥부는 틀렸다며 술 풍악 여자 그리고 상상력이라 말한다. 붓을 쥔 사람으로서 세속적 욕구에 지나치게 흔들리는 점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조혁이라는 인물을 통해 흥부를 변화시킨다. 욕망에 솔직한 삼류 야설작가가 병조판서(지금으로 치면 국방부 장관)의 모반도 막고, 왕에게 직언까지 할 수 있게 된 데까지는 조혁의 역할이 8할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독은 조혁을 통해 미디어콘텐츠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외친다. 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라고.

 

다만 아쉬운 점은 핵심 메시지가 미처 각인되기도 전에 지나친 정치적 함의 때문에 의미없는 메아리가 됐다는 거다. 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 그래 좋다. 그런데 조혁이 흥부를 훈련시키는 내용이 나오다가 갑자기 국민 주권론에 대한 이야기로 빠져버리니 양푼에 파스타를 담아서 내오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스스로의 각본에 자신이 없었을까? <흥부>는 아버지같은 존재를 통해 성장한다는 점에서 <바람>, 국가의 주권을 찾는다는 점에서 <변호인>을 변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게다가 이야기는 어찌나 뚝뚝 끊어지는지, 한 편으로만 감독을 평가하면 안 되겠지만 이 작품만 봤을 때 필자는 감독의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다. 김주혁의 유작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김주혁의 연기는 아주 훌륭했다는 점에서 연출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더욱 아쉽게 다가오는 영화다.

 

김주혁 스페셜에서는 빼도록 하자. 평점은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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