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장의 짧은 리뷰

<블랙 팬서>, 이 자리에 흑인이 서기까지. 본문

영화 FILM

<블랙 팬서>, 이 자리에 흑인이 서기까지.

김사장의 짧은 리뷰 2018. 2. 17. 16:00

<블랙 팬서>, 이 자리에 흑인이 서기까지.

 

2018.02.14., CGV 강변

 

마블에서, 아니 어쩌면 슈퍼히어로 장르 최초의 흑인 히어로가 등장했다. 쉴드의 국장 닉 퓨리(사무엘 L. 잭슨)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흑인이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아프로 아메리칸 조연이 아니라, 오리지널 아프리칸인 주연이다. 약간은 어색한 영어 발음과 아프리카 고유의 문화경관은 첨단 과학 시설이라는 이질적인 서구 경관과 만나 블랙 팬서라는 히어로가 가지고 있는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잘 드러낸다.

 

여느 MCU 영화와 마찬가지로, <블랙 팬서>도 미술팀의 분투가 돋보인다. 소품은 말할 것도 없고, 가상의 국가 와칸다를 스크린에 담아낸 솜씨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마치 도공이 아름다운 도자기를 빚어내듯 소홀함없이 치밀하게 구성된 와칸다는 아프리카의 유서 깊은 국가가 가지는 전통적인 경관과 비브라늄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는 강대국으로서의 미래 경관을 아주 현실감있게 그려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가상의 유럽 국가 소코비아를 묘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비현실을 현실로 가져오는 능력은 더욱 탁월해졌다.

 

특히 아프리카 전통에 대한 존중이 돋보이는 부분들이 많았다. 왕이 되기 위해 티찰라가 거쳐야했던 시험, 왕위에 오르는 과정, 다른 부족과 연합해 한 국가를 이루면서도 부족들마다 독특한 특징을 유지하고 있는 점, 동물을 부족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토테미즘, 서로 다른 신을 모시는 등의 부분들이 그렇다. 특히 영화의 초반 음바쿠와의 결투에서 음바쿠가 티찰라에게 너희의 신은 어디갔냐라고 외치는 부분은 꽤나 인상적이다.

 

영화는 코믹스의 내용 중에서도 킬몽거 에피소드를 메인으로 하고 있다. 원작 코믹스에서 킬몽거는 왕족이 아니지만 보다 드라마틱한 티찰라의 위기를 위해 킬몽거를 왕족으로 각색했다. 킬몽거의 태생은 그가 주창하는 사상에 설득력을 더한다. 킬몽거를 보노라면 말콤 X가 떠오른다. 우연인지, 미국에는 과거 블랙 팬서라는 래디컬 흑인운동단체가 있었다. 때문에 말콤 X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블랙 팬서의 자리를 노리는 킬몽거의 행보가 보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더불어 <블랙 팬서>가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라이온킹>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티찰라가 음해에 의해 왕좌를 잃고 다시 되찾아가는 과정이 심바와 비슷하긴 하다. 또한 아이언맨이나 토르 등 다른 마블의 영웅들도 힘을 잃었다가 되찾는 과정을 거치는데 역시 이와도 유사하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단순하게 힘만 되찾는 것이 아니라 왕좌를 되찾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는 개인의 철학적인 고민을 담아내는 수준을 넘어 사회적 이슈에까지 접근하기 시작했다. 화이트 워시로 유명한 할리우드에서 <문 라이트>가 독립 영화로서 흑인 인권 영화에 큰 획을 그었다면, 백인이 들러리를 선 <블랙 팬서>는 가장 스케일이 큰 흑인 인권 영화가 될 수 있겠다. 게다가 <블랙 팬서>는 흑인 인권에만 그치지 않고 난민 문제에까지 접근하는데,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스파이더맨 프랜차이즈에서 꾸준히 강조해 온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메시지를 변주하며, 채드윅 보스만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럼에도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이 기존의 마블 시리즈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이야기의 탄력이 부족해 긴장이 자주 끊어진다는 점,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지나치게 빨리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일 수는 있지만 잘 만든 영화가 되기는 어렵겠다.

 

달빛이 아프리카를 비출 때. 평점은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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