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장의 짧은 리뷰

<1급기밀>, 나무를 보려다 숲을 놓쳤다. 본문

영화 FILM

<1급기밀>, 나무를 보려다 숲을 놓쳤다.

김사장의 짧은 리뷰 2018. 2. 5. 03:46

<1급기밀>, 나무를 보려다 숲을 놓쳤다.

 

2018.01.22., CGV 대전 가오

 

홍기선 감독의 유작이 됐다. 1983년에 데뷔해 단 11편의 영화를 연출하고 그의 필모그래피는 끝났다. 대체로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곤 했다. 농민들의 참혹한 현실부터(<파랑새>), 원양어선을 타는 막장의 사람들(<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행복을 꿈꿨던 좌익수의 이야기(<선택>), 비정규직의 애환을 담은 단편(<세 번째 시선>) 등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회의 곪아 썩은 부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1급기밀>은 방산비리를 그 소재로 한다. 홍기선 본인의 화법이 그대로 드러난 영화는, 용두사미의 모양새로 엔딩 크레딧을 올렸다.

 

방산비리는 개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군이라는 거대하고 폐쇄적인 시스템 속에서 나타나는 권력의 전횡이다. 필자 같은 일반인으로서는 그 규모를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그러나 영화는 명확한 악의 주축(최무성, 현석 )을 설정하고 그의 몰락을 향해 내달린다.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는 오만한 생각을 위해 내부고발자(김상경, 대익 )의 양심에 의존한다. 이는 선호(최귀화)를 위시한 현석의 부하들, 방송국 사람들, 힘 있는 언론인 등 그들만의 리그가 가진 폭력성을 그려내는데 급급하다.

 

대익은 미련하게 그려진다. 가족이 고통을 받아도, 자신의 군 생활이 경각에 달해도 그는 현석의 몰락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끊임없이 내달릴 뿐이다. 극의 절정에서 그 갈등이 해소될 때 관객은 시스템이 가진 맹점이나 권력자들이 결속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조금의 관심도 갖지 못한다. 영화의 드라마는 관객들에게 힘없는 자의 정의도 실현될 수 있다는 환상과 권선징악이라는 우릴 만큼 우려낸 주제를 전달하는 데 그친다.

 

덕분에 최무성, 김상경, 최귀화 등의 탄탄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은 억압된 연기를 보여줬다. 이 영화가 가진 단점 중 가장 크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악녀> 이후 불필요한 힘을 한껏 뺀 김옥빈의 연기는 단연 발군이었다.

 

사회문제는 개인의 윤리적 일탈이 그 원인이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누적된 관습들, 그들만의 리그, 책임져야할 현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개인들과 권력자들이 그들의 안위를 위해 결속하는 메커니즘이 중요한 원인이 된다. 그럼에도 현석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고 그에게 몰락이라는 죽음을 선사하는 것은 지나치게 쉬운 방법이고, 또한 나무를 보느라 숲을 보지 못하는 경우다. 금방이라도 전쟁이 발발할 것만 같은 시기에 개봉한 영화 치고는, 지나치게 허술하다.

 

약한 자의 정의라는 달콤한 거짓말. 평점은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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