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장의 짧은 리뷰

44번째, 하이-라이즈 High-Rise , 2015 본문

영화 FILM

44번째, 하이-라이즈 High-Rise , 2015

김사장의 짧은 리뷰 2016. 4. 4. 16:08

놀랍다. 그리고 어렵다. 나는 이 영화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하이라이즈는 초고층 아파트다. 고층과 저층의 두 가지 계급이 있다. 이 두 계층간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것이 한 번에 터져버린다. 고층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도 높지만 허영에 찌들어 있다. 

자, 이제 어떤 구도인지 대충 감이 올 것이라 믿는다. 마르크스주의는 다소 비약이 있지만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결구도로 단순화된다. 무력을 동원한 계급 투쟁을 통해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주인공 닥터 랭(톰 히들스턴)은 최첨단 초고층 아파트 하이라이즈에 입주한다. 하이라이즈는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랭이 거주하는 층은 25층, 중층이다. 하층민과 상층민 사이에서 랭은 하이라이즈의 탐욕과 탐닉으로 가득찬 생활을 즐긴다. 사건의 발단은 랭이 최상층 거주민이자 하이라이즈의 건축가인 안토니 로얄을 만나고, 한 파티에서 39층 거주민이 투신자살을 하고 난 후이다(영화에서 이 대목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라더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의 초반에는 하이라이즈의 미스테리한 분위기와 매력을 아주 밀착해서 보여준다. 하층민보다는 상층민의 삶을 더 많이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중반에 접어들면서 랭이 하층민(대표적으로 와일더)와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또한 하층민의 삶을 상층민과는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다 39층에 거주하는 먼로가 투신자살을 한다. 와일더를 비롯 상층 하층 나눌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집단적인 광기와 히스테리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여기서부터 영화가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이 영화를 정리하기 위해 이틀의 시간을 두고 영화를 곱씹어봤지만 아직도 이 영화의 진의를 모르겠다. 다만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라는 처음의 포커스에서 보자면, 마르크스주의가 그랬듯이 자본주의의 필멸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의 원작 작가인 발라드는 이미 사전에 '발라드스럽다'라는 말을 등재시킬 정도로 영향력있는 작가이다. 이 말의 의미는 'J.G.발라드의 작품에서 드러난 디스토피아적 현대성과 황량한 인공 풍경, 환경의 개발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 혹은 그것을 연상시키는'인데, 이미 영화화가 진행되었던 <크래시>, <콘크리트 섬>과 더불어 도시재앙 3부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바로 <하이라이즈>이다. <크래시>, <콘크리트 섬>은 못본 영화지만 그 두 작품을 봤거나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발라드스러운 것이 뭔지 바로 이해할 것이다. 

아름답다 느껴질 정도로 소름끼치는 영화. 평점은 7/10. 

덧) 뱃슈에서 느꼈지만 제레미 아이언스의 비리티쉬는 섹시하다. 

덧2) 와일더 역에 캐스팅된 배우가 루크 에반스인지 전혀 몰랐다. 

덧3) 흡연하는 임산부, 26층 창녀, 부잣집 도련님, 왕년에 잘나간 여배우 등, 다양한 인간 군상만큼 혼란스러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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